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의 책

The book "Merci Pour Ce Moment" written by French President Hollande's former companion Trierweiler is displayed in a bookstore in Paris

Valérie Trierweiler /  Merci pour ce moment

지난해, 스쿠터 위의 남자 올랑드의 깜짝 뉴스가 스쳐간 뒤, 공식적으로 올랑드와의 관계를 접고, 세인의 시야에서 사라져간 프랑스의 전 퍼스트레이디 발레리 트리바일레가 책을 냈다. 당연히 그녀가 내 인생의 남자라고 지칭했던 올랑드와 함께한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어제 (9월4일) 출간되자 마자 한나절 반만에 20만권의 초판이 다 나가고, 이미 2쇄에 들어갔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던 퍼스트레이디에 속했던 그녀. 철저한 복수극에 성공한건가?

이 책은 피할 수 없이 <복수>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저자의 입장에선 언론에 의해 왜곡되었고, 조작되어왔던 자신의 존재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이해받고 싶어서 쓴 책이다. 올랑드는 엘리제궁 길 건너에 있던 연인을 만나러 가던 모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낱낱히 발가벗긴 채 국민 앞에 서게 되었다. 정치인들의 사적인 면모가 공개되는 일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정서처럼,   나 역시 이 책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으나, 신문에 일부 소개된 이 책의 몇몇 대목들을 살펴보며, 권력의 달콤한 마약에 빠져 무력하게 허우적대는, 늙은 필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면에서 이 책이 지닌 나름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청중을 향해 눈을 반짝이며 열정에 가득 찬 연설을 하며, 당신들이 원하는 바를 내가 안다는 듯, 환히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던 그들이 권력을 마침내 손에 쥔 후, 황홀한 도취감에 빠져 눈과 귀를 막고 오직 군림하는 재미 속에서 지내는 그 모습. 발레리는,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한 입으로 두말하고, 금방 들킬 거짓말을 뻔뻔하게 눈 마주치며 하고, 그것이 들켜도 언제나 자신은 떳떳한 듯, 당당한 듯 행동하는  정치인 올랑드의 모습과 한 여자의 연인으로서의 모습이 일치하는 것이었음을 말한다. 사회당 대선 후보 올랑드를 선택했던 수많은 시민들이 그의 모순된 정책에 배신감을 느끼고, 상처받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녀는 그에게 배신당했고, 상처입었다고 적고 있다. 어쩌면  바로 이 지점이  정치인 들의 사생활에 시큰둥한 프랑스인들이 이 책에 큰 반응을 보였던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13%까지 내려앉은 기록적인 지지율의 수렁에 빠진 올랑드에게  발레리의 책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이며,  토리라 장관을 제외하곤  다들 일찌감치 자신들이 소위 사회주의자, 프랑스의 좌파정치인들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한 것으로 보이는 내각의 모든 장관들에게도, 그녀는 매서운  화살을 날렸다.발레리가 뒤돌아서며 날린 한 방은  멀리까지 그 포연을 날릴 것같은  예감이다.

다음은 책의 발췌부분이다.

그가 천명하던 <모범적인 대통령>은 어디있는가? 길 건너 편에 있는 여배우를 만나러 갈수만 있으면 언제고 사라지는 대통령이 어떻게 두 개의 전쟁을 지휘할 수 있겠나. 공장들은 문을 닫고, 실업률은 치솟고, 자신의 지지율은 바닥을 기는 와중에 대통령이란 자가 어찌 그런 식으로 행동거지를 취할 수 있는건가.

우리 둘의 사회적 계급의 차이는 끔찍한 수준이었다. 그는 나를 코제뜨라는 별명으로 종종 놀리곤 했다. 그는 돈과 관련한 어려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살아오면서 전혀 부족함을 몰랐던 그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는 언제나 최고의 것만을 원했다. 내가 편안한 식당에 가는 걸 더 선호할 때, 그는 으리으리한 레스토랑에 갈 것만을 주장했고, 내가 작은 숙박업소에서 더 편하게 느낄 때, 그는 대형 호텔에서 묵길 원했다.

나는 검소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우리에게 풍족하지 않았던 돈을 낭비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무엇을 사건, 언제나 낭비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조심해야 했다. 나는 이러한 습관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내가 한 친구와 바겐세일 기간에 내 아들들을 옷을 사러 갔을 때, 한 판매원이 나에게 말했다. < 마담 사르코지 !> 나는 손으로 아니라는 사인을 보냈다. 또 다른 판매원이, <아 당신은 올랑드의 부인이군요> 했다. 내 바로 앞에서 옷을 고르고 있던 한 커플이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부인도 바겐세일에 줄을 서서 옷을 사야 한다니, 정말로 경제위기군!>

그는 부자들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했다.그러나, 올랑드 대통령은 가난한 사람들을 싫어한다. 좌파를 자처하는 그는, 사석에선 가난한 사람들을 지칭하여, “이빨없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유머감각을 자랑스러워 하며.

올랑드는 말했다. “로항 파비우스(외무부 장관)는 인생을 망쳤어. 그는 대통령이 한번도 되어보지 못했잖아.”

프랑수와는 동성애결혼법이 아마도 그가 프랑스 역사에 남길 유일한 흔적이 될 것이라는 것, 그것이 현 사회당이 이룬 상징적인 개혁이 될 것이란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또한 이 개혁이 올랑드의 사회당이 이룰 마지막 개혁이 될 것이란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그가 공약으로 내세 웠던 그 어떤 좌파적 개혁도 실천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이민자들에게 약속한 선거권 부여를 포함하여. 신념의 부족과 이를 막아설 수 많은 장애를 뛰어넘을 의지의 부족으로.

 

이 책에서 폭로한, 프랑수와 올랑드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편견이 다소 충격적인 반응으로 나타나자, 올랑드는 이렇게 반응했다.

”나는 결코 내 인생 전체의 신념인 가난한 자들을 위한 나의 약속, 나의 정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소박한자들을 위해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내 존재 이유다”

마치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의 증언이 진실이었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한 어리석은 발언이다. 그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실업을 극복하기 위한 거의 모든 노력도 기업과 고용주에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만 진행되었고, 그 결과 실업률은 1%도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위선적인 연설을 늘어놓으며 스스로 자신의 말에 도취되는 권력자들의 고질적 정신착란의 증상. 바로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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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 1965년  프랑스 앙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상이군인이었고, 어머니는 스케이트장의 매표소에서 일하셨다. 소르본 대학을 거쳐 24살부터 파리마치에서 정치부 기자로 일해왔고, 프랑수와 올랑드와 2005년 경부터 삶을 함께 해왔다. 전남편과 얻은 세 아들이 있고, 엘리제궁에 살면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시절에도 기자일을 멈추지 않았다. 올랑드가 여배우 줄리 가예와의 관계를 시인한 직후, 동시에 그녀와 헤어질 것을 원하면서, 지금은 세 아들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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