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자살 Eric Zem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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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의 작가 모디아노를 제낀 <프랑스의 자살>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읽는 신문 사이로 요즘 들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눈에 걸려들는 이름이 있다. 에릭 제무르 Eric Zemmour. 전성기 때의 이효리가 그러했듯, 이 남자의 이름은 생쥐들을 낚으려는 치즈처럼 신문 상단에 매일 걸쳐지고 있다. 대체 누구길래? 축구 선수? 가수? 아니면 한탕 크게 해 먹다가 걸린 정치인? 그의 정체는 이른바 논객이다. 피가로지(프랑스의 대표적 우파신문)기자 출신으로 몇 년 전부터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진출했고, 토론 프로에 단골로 초대되는 극우 논객, 그리고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의 저자이다. 신문에 일주일에 한 번 등장하던 그의 이름이 이틀에 한번.. 그리고 급기야는 매일 매일 오르게 된 건, 그가 3주 전 출간한 책 때문이다. <프랑스의 자살> (Le suicide français). 올랑드의 동거인이었던 발레리 트리발리에르의 올랑드를 향한 강력한 한 방이었던 “고마웠어요. 그 시간들”(Merci pour ce moment)을 제치고, 뜻밖의 노벨문학상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신간을 가볍게 따돌린 채, 이 자극적인 제목의 책은 출간 즉시 압도적인 베스트셀러로 뛰어 올랐다. 10월2일 발간 이후 매일 하루에 5천부씩. 방송들은 앞 다투어 그를 모셔가고, 그는 이제, 프랑스 방송가에서 가장 잘 팔리는 명사가 되었다. 무려 544페이지. 피케티의 ” 21세기 자본론”(970p)에 비할 바 아니지만, 심심풀이로 읽어 내려갈 책은 아니다.

 68혁명을 프랑스 망조의 시작으로 지목

에릭 제무르가 <프랑스의 자살>에서 던진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자신감을 상실했다. 그들은 이 나라가 잘못된 길로 빠져들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이 막다른 길목으로 그들을 인도하게 된 그 이유를 지목하기를 주저한다. 대체 어떤 순간, 그들은 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게 된 걸까? ”

오늘을 사는 프랑스인들의 잠재 의식에서 떠나지 않을 이 질문에 대해, 놀랍게도 에릭 즈무르가 지목하는 그 최초의 해답은 68혁명이다. 결국 68혁명과 그 혁명이 쏟아놓은 사상들이 오늘의 프랑스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놨다는 것이다. 기존의 프랑스를 지탱하던 모든 가치들을 파괴하며. 그는 68혁명의 주역들을 비판하고, 여성들을 비난하며, 이민자들, 흑인들, 아랍인들, 동성애자들을 모두 공격한다. 그리고 자신을 드골주의자, 보나파르트 주의자로 부른다.

1789년 혁명이 프랑스의 가장 큰 국경일이며,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인 것처럼, 68혁명은 20세기의 프랑스가 다시 한 번, 유럽의 활화산이 되어 정신과 행동을 고양하고 유럽사회 전체의 진보를 추동하게 했던 눈부신 사건이다. 그런데, 그 68을 프랑스 몰락의 주범으로 정조준한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궤변을 지껄이는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의 궤변이 많은 대중들을 빠른 속도로 선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드골주의자, 나폴레옹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소위 좌파진영에서 이야기하는 프랑스 몰락의 시점에 대한 정설은 1983년이다. 사회당의 미테랑이 권력을 잡은 뒤 2년이 흐른 시점. 2년 동안 좌파적 신념을 정책으로 실천하는 척 하던 미테랑은 이후 본격적인 우편향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무려 12년을 신자유주의화의 길로 직진하였다.  68혁명은 70년대 내내 프랑스 사회를 변혁시켰고, 그 변혁의 정점에서 사회당의 후보가 권력을 점유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21세기 들어, 유럽연합이 신자유주의자들의 마당이 되면서, 프랑스 사회는 그들의 지시대로 움직여 진다. 신자유주의 노선은, 단 한마디도 거역할 수 없는 거의 신앙에 가까운 독트린이 되버렸다. 미테랑 이후 17년 만에 집권한 올랑드의 사회당은 우파 정당이 가던 길을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간다. 지금 이 나라엔, 정부는 없고, 다국적 기업과 한줌의 부자들을 위해 봉사하는(그러는 동시에 자신들도 한몫 챙기는) 한 줌의 정치인들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우도 좌도 길을 찾지 못하니, 이제 미친 척 하고 극우라도 찍어볼까. 하는 현상은 좌와 우가 모두 신자유주의의 독트린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데서 빚어지는 극단의 선택이다. 적어도 극우정당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유럽연합의 독트린과 과감히 절연할 것을 부르짖는다. 그러나 극우정당에는 그들을 지지해줄 논객이 없었다. 프랑스에서 여전히 극우는 반지성, 반이성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극우에 끌리지만, 차마 이성적으로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에릭 제무르의 등장은 단비와도 같았던 것.

극우정당 시장을 탄생시킨 바 있는 도시 Bézier에 초대된 에릭 즈무르

극우정당 FN 출신의 시장을 탄생시킨 도시 Béziers에 초대된 에릭 제무르

알제리계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다

그는 1958년 파리의 외곽도시 몽트뢰이(Montreuil)에서 알제리계 유태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국립행정학교(ENA)를 두 번이나 떨어지고, 대신 기자의 길을 선택했던 에릭 즈무르의 이력은 그의 삶의 지향했던 지점이 어디였는지를 설명해 준다. 헝가리 이민 가정출신의 사르코지와, 사회당의 사르코지로 불리며, 외국인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 스페인계 이민자 출신 마누엘 발스 총리가 그랬던 것처럼, 외국인 혐오로 자신의 주가를 드높이는 이자 역시, 출세를 위한 열망으로 쉬지 않고 달려온 이민자 출신이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에 나와 상대방을 순진한 바보로 취급하며 독설을 쏟아내고, 프랑스 사회가 금기시해 오던 지대를 성큼성큼 자유롭게 밟고 다니며 무수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선동적인 화법을 그는 구사한다. 프랑스 사회가 일찍이 가져본 적이 없는, 소위 지식인 행세를 하면서, 차마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사회적 금기들을 노골적으로 건드리며, 악역을 맡는 대가로 미디어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그는 한국의 생계형 극우논객 변희재의 프랑스 버전이라 할 만하다.

하얀 프랑스인들의 대변인으로 불려나온 알제리 남자

제무르 현상이라고 까지 불리는, 이 남자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열광을 분석하는데 나선 학자들은 그가 프랑스의 불만 속에 침묵하고 있는 <백인들의 대변인 > 노릇을 해 주기 때문란 해석을 내놓는다.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던 제국주의에 대한 드러낼 수 없는 향수, 드골이 집권하던 시절의 절도 있고 근엄하던 프랑스, 유럽연합에 질질 끌려 다니며 눈치 보는 오늘의 프랑스에 대한 실망과 분노. 차마 자신의 입으로 이 치졸한 욕망과 아쉬움을 털어놓을 수 없기에,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기몰이를 위해 더 강도 높은 자극적 발언을 난사하는 이 작은 남자를 필요로 하는 프랑스인들.

더 이상 그 어느 구석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거대한 여객선. 망망대해에 떠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표류하고 있는 듯한 이 사회가 어느 지점까지 와 있는지를 즈무르 신드롬은 가늠하게 해준다. 이 악몽이 짧은 에피소드로 끝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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