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의 대물림을 끊어낸 한 여자의 이야기

친구 이자벨은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금발에 늘씬한 몸매를 가진 그녀의 엄마가 나이 마흔에 이자벨을 낳았을 때,
이자벨은 숱많은 새까만 머리에 작은 키, 백인 답지 않은 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를 똑닮았던 것이건만, 태어난 딸을 보고 어머니가 했던 첫 마디는 ” 이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야”.

그녀의 어머니는 병원측에 혹시 아이가 바뀐 것이 아닌지를 재차 물었다. 그리고, 이자벨은 자라는 동안 수천번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를 따라 거리에 나서면 사람들이 너무도 다른 모녀를 번갈아 보며, 당신의 딸이 당신과 전혀 닮지 않았다고 말하기가 무섭게, 엄마는 병원에서 딸이 바뀐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다는 말을 빠짐없이 하곤했다. 성인이 되어 삶의 무대를 파리로 옮긴 후에도, 엄마는 전화를 통해서 그녀를 파괴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고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소화도 안되고, 두통에 시달렸다. 엄마는 전화를 통해서 자신이 딸에게 품고 있는 부정적 감정을 매번 전달하곤 했다.

어느날 친구와 대화하다가 친구가 “결국 너의 엄마는 너를 단 한번도 딸로 받아들이지 않은거야. 널 한번도 사랑한 적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이자벨은 마침내 선명하게 깨달았고, 그리고 날 듯이 가벼워졌다. 그 순간이 자신은 비로소 <해방>되었다고 말한다. ‘그래. 그녀는 날 사랑하지 않았어. 나도 그녀를 사랑할 필요가 없어.’ 곧장 엄마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날 사랑하지 않지. 괜찮아. 그럴수 있지. 이제 나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께. 나는 이제 엄마없는 존재인 나를 다시 만들어 갈테니, 이젠 나에게 전화하지 말아주세요. ” 그 얘기를 들었던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나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했어!”. 이자벨은 외할머니를 한 번도 본적 없을 뿐 아니라, 엄마가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결국 엄마는 자신의 엄마에게 학대당했었고, 자신이 당한 학대를 그대로 대물림했던 것이었음을 그 때 알게 되었다.

이자벨이 학대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데 성공한 것은 서른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그 때부터 삶은 다른 빛깔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남자를 만났고, 자신의 엄마처럼 나이 마흔에 딸을 낳았다. 그녀의 엄마가 갖기를 원했던 금발의 늘씬한 딸은 한세대를 건너서 태어났다. 이자벨은 자신의 딸을 엄마에게 보여주기는 하였지만, 이제 거의 서로 연락하지 않고 산다. 대학교수인 그녀는 자신의 삶을 잘 영위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 열다섯살이 된 딸과도 완벽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낸다. 그녀는 딸을 무조건 존중하고, 지지하는 동시에, 그녀가 독립적인 존재로 자라도록 돕는다. 이자벨의 얼굴엔 기쁨이 충만하다. 그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범사에 감사하는 존재의 기쁨이기 보단, 세상을 자신이 마련한 간단한 틀 속에서 파악하고, 자신만의 유모어 코드로 그 세상을 즐기는 사람의 모던한 즐거움, 거대한 운명의 수수께기를 마침내 풀어내고 여유로워진 자가 누리는 해탈의 미소이기도 하다.

이자벨은 여러차례에 걸쳐서, 자신의 불우했던 어머니와의 관계를 마치 남얘기하듯 털어놓곤 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마치 소설에 나오는, 완결된 하나의 스토리였다. 자신을 속박하는 까르마에서 걸어나와 객관적으로 자신과 그 주변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순간, 마치 전지전능한 마법의 지팡이를 지니게 되는 듯, 그녀는 자신이 구상하는대로 삶을 계속 이뤄나갔다. 지극한 불행의 덫에 오래 걸려있던 사람답게, 이제 그녀는 오로지 행복에 촛점을 맞춘다. 그리고 마치 그것은 아이폰 위의 터치 스크린처럼 그녀가 손가락으로 슬쩍 건드리기만 하면, 다양한 모양으로 그녀의 삶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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